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경과 === 범인은 마치 각본이 있는 것처럼 철저하게 움직였다. 협박 전화를 처음 건 후 이형호 군의 보호자가 [[경찰]]에 신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어 '''"[[서울서초경찰서|서초경찰서]] [[형사]]입니다. 거기 있는 형사들 좀 바꿔주세요"'''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형사인 것처럼 연기했다. 당시 이형호의 보호자(의붓어머니)는 이미 경찰에 신고하였고 집에 '''__강남__'''경찰서 형사가 출동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서울강남경찰서|강남경찰서]] 형사의 유도로 이형호의 의붓어머니[* 당시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은 재혼한 상태로 이형호의 친어머니는 따로 있었다.]가 '''"가정집에 무슨 형사가 있나요?"'''라고 말해 무사히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범인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경우를 대비해 치밀하게 행동했다. 이틀 뒤인 [[1월 31일]]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의 [[현대 그랜저|그랜저]] 승용차에 설치된 [[카폰]]으로 연락하면서 [[서울특별시|서울]] 시내 곳곳으로 불러내 이우실로부터 돈을 받아내려고 했다.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現 한국공항공사 항행지원센터. 사건 발생 당시에는 [[인천국제공항]]이 건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국내선 청사 건물은 국제선 1청사로 쓰이고 있었다.] 주차장 2구역에 차를 세우고 차 열쇠를 꽂아놓은 다음 차 안에 돈을 놓고 나간 뒤 바로 [[서울특별시 시내버스/2004년 개편 전 목록/600번대#s-2|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작 범인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 날 밤 전화를 걸어 '''"왜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십니까? (자동차) 뒷좌석에 누가 타고 있었습니다"'''라는 변명을 했다. 당시 [[서울강남경찰서|강남경찰서]] 형사가 잠복해 있었지만 이우실의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 있었지 앞뒤 좌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범인이 현장에서 형사가 트렁크로 숨어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거나,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잠복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일부러 넘겨짚었거나, 뒷좌석이 트렁크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잠시후 범인은 [[충무로역]] [[공중전화]]를 이용해 이우실의 카폰에 다시 전화를 걸어 [[대한극장]] 앞으로 불러냈고 인근 제과점인 [[태극당]] 건너편에 차를 세운 뒤 태극당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라는 지시를 했다. 하지만 당시 태극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이를 알아차린 범인이 다시 연락해 '''"제과점 문이 닫혔습니다. 근처에 치킨 센터는 열려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죠"'''라고 말하면서 지루한 이동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이번에는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범인은 약속 장소에 자신이 알고 있는 형사들이 두 명이나 와 있다며 이형호의 의붓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누군가가 주변을 계속 얼쩡거리고 있네요.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속 잡아 떼실 건가요?"'''라고 협박했다.[* 범인 입장에서는 자칫했다가는 자신이 잡힐 우려가 있으므로 이형호의 보호자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 확실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집에 협박 전화를 걸면서 추궁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상황은 약속 장소에 승용차 문을 열고 돈을 배치하였는데 마침 근처를 배회하는 좀도둑 2인이 해당 차량을 발견하고 돈을 가로채려 하였고 유괴범으로 착각한 형사팀은 좀도둑 2인을 검거하였다. 아마 해당 장면을 범인한테 들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형호의 의붓어머니는 범인의 집요한 추궁에 삼촌이 같이 나간 것 같다고 말했고 경찰이 개입했음을 반 시인하고 말았다. 다만 마지막 통화에서 범인이 남긴 말을 보면 당시 범인은 의붓어머니가 정말로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고 여긴 듯하다. 이에 범인은 직접 돈을 건네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은행 계좌를 개설해 돈을 받기로 했다.[* [[1991년]]은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이라 신분증 없이도 자유롭게, 심지어 아무 이름으로도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 결국 금융실명제는 피해자가 사망한 뒤인 [[1993년]]에야 비로소 실시되었다.] 범인은 [[한일은행]]에 윤정수, [[한국상업은행|상업은행]]에 김주선이라는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한 뒤 유괴 7일 째인 [[2월 4일]]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이형호의 의붓어머니에게 약속 장소로 차를 몰고 나오라고 지시했고 버스정류장 옆 쓰레기통에 메모가 놓여있으니 그것을 보고 다음 메모가 놓여있는 장소로 이동하라고 지시하는 이른바 '''무인 포스트 방식'''을 이용했다. 이렇게 해서 따라간 마지막 메모에는 계좌번호와 함께 돈을 입금시키라고 적혀 있었는데 범인은 자신이 개설한 두 은행에 2천만 원씩 총 4천만 원[* [[1991년]] 당시 4천만 원이면 [[2021년]] 기준으로 1억 원에 가까운 거금이다.]을 입금하라는 지시를 했고 이우실은 경찰과 상의하여 한일은행에만 입금했다. 그리고 한일은행 전산센터에 형사들을 파견해 인출 여부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는데 정작 범인은 뜬금없이 [[2월 13일]] 저녁 '''"아이에 대한 애착이 없군요. 형호가 죽기를 바라죠?"'''라는 협박을 했고 '''"[[올림픽대로|88도로]]를 타고 가시다 보면 서울교[* [[경인로]]와 [[여의대로]]를 잇는 다리다.]라고 다리가 있습니다. 거기 밑에 철제 박스가 있고 메모를 돌로 눌러놨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인 줄 알고 잘 진행해 주십시오."'''라는 최후의 통첩을 했다. 메모의 종착점은 [[양화대교]] 인근 철제 박스였고 이우실은 이곳에 가짜 돈이 든 봉지를 둔 채 떠났다. 주변에는 형사들이 잠복해 있었고 잘 하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무전기로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철제 박스의 위치를 혼동하는 바람에 범인이 돈을 집어갈 동안[* 대략 저녁 8시 경이었다.] 형사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날 밤 범인은 전화를 걸어 '''"가짜 돈이 잔뜩 섞여 있습니다. 형호를 되찾길 바라지 않는 것으로 알죠. 다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신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연락을 끊어버렸다. 하지만 이우실은 범인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갈 것에 대비하여 한일은행에 입금되었던 돈을 상업은행 계좌로 송금했고 '''드디어 [[2월 19일]] 상업은행 상계동지점[* 현재 [[우리은행]] 상계동지점 ([[노원구]] [[동일로]] 1373)]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인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은행원이 단말기에서 사고신고 계좌라는 문구를 보고 당황하면서 남자를 의심하자 발각된 것을 알아챘는지 남자는 다급하게 은행원에게 통장을 빨리 달라고 했고 잠시후 나온 통장을 낚아채듯이 빼서 황급히 달아났으며 당시 해당 지점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끝내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말았다. 통장 개설 신청서와 메모지에는 [[지문]]이 전혀 없었고 범인의 행방은 미궁 속에 빠져 버렸다. 범인의 마지막 통화로부터 1개월이 지난 [[3월 13일]], [[한강]]공원 [[잠실]]지구 인근 터널(일명 토끼굴) 옆 배수로에서 어린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당시 시신은 눈과 입에 테이프가 붙어있고 손발이 결박된 상태였다. 확인 결과 시신은 유괴된 이형호였고 부검 결과 머리에 뭔가 부딪쳐 생긴 두피하출혈이 발견되었고 위에 남아 있는 음식물이 실종 당일 친구네 집에서 먹은 음식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망 시점은 유괴된 직후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형호 군은 '''유괴 당일에 이미 사망'''하였으며 범인은 애당초 이형호를 살려서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돈만 가로챌 계획으로 44일 동안 피해 부모를 농간한 것이다. 유괴 당일에 살해해서 이미 아이가 죽었는데도 뻔뻔스럽게 계속 금품 요구 및 협박 전화를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